1. 네모 선장의 이름은 “아무도 아닌”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작가는 그를 알 수 없는 인물, 미스터리를 간직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으니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요. 그런데 혹시 그를 영웅이라 칭할 수 있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그의 말을 적어도 세 곳 이상 인용해 그가 영웅임을 변론해 주세요. 그리고 영웅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지구는 바다에서 시작되었고, 결국 바다로 끝날지도 몰라요. 바다에는 완벽한 평화가 있습니다. 바다의 품에 안겨서 살아보세요! 오직 바다에서만 인간은 독립을 누릴 수 있습니다!” (page 100), 네모 선장의 열변은 내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불타는 눈빛과 열정적인 몸짓은 선장을 딴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이 배를,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듯 그렇게 사랑하고 있었다! (page 125)
아로낙스 박사가 묘사한 부분처럼 네모 선장은 바다를 향한 사랑과 열정이 깊었다. 사회에 환멸감을 느껴 아무도 쉬이 찾아오지 못할 바다 속을 선택했으나 단순한 도피처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바다를 자신과 한 몸처럼 사랑하며 노틸러스호에도 깊은 애정을 보였다. 육지에 신세를지지 않으면서도 바다에 크게 무리를 주지 않을 정도로 노틸러스호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그렇게 바다와 어울려 살아왔다. 서양의 전통적인 자연관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았으나 네모 선장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까지도 아낄 줄 알면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르지 않고 직접 실천해나가는 것은 앞서나가는, 그리고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인도인은 억압당한 나라의 주민입니다. 나는 그 사람의 동포이고, 내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그 사람의 동포일 겁니다!” (page 298), “내가 이 보물을 좋은 목적에 쓰지 않는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이 지구상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억압받는 민족이 있다는 걸 내가 모르는 줄 아십니까? 도움이 필요한 불행한 사람들과 원수를 갚아주어야 할 희생자들이 있다는 걸 내가 모르는 줄 아세요? 박사는......?” (page 366-367)
이 책의 배경이 된 시대는 당시에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때 오히려 약자였던 인도인 편에 서며, 이제껏 인간을 피하던 행동과는 다르게 직접 구하려고 행동하고 굳은 의지로 힘주어 말했던 부분이 영웅적 면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망설이고 꺼리던 순간에 나서서 직접 행동하고 차별을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 말이다.
“아로낙스 박사, 내 부하를 치료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page 245), 네모 선장은 양손을 꽉 움켜쥐었다. 눈에서 눈물이 몇 방울 떨어졌다. 선장이 흐느낄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page 247)
영웅은 동료의 죽음에도 슬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주변 사람들을 아끼는 뜨거운 감정을 배제하고 행동한다면, 오로지 자신의 이념밖에 모르고 달려가는 사람이나 목표 때문에 주변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야심과 포부가 큰 사람이라고 부르지 영웅이라고 하지 않는다. 인간과 마주치는 것조차 싫어하던 네모 선장의 반응에 아로낙스 박사가 놀랐던 이유도 매말라보였던 그가 여전히 인간 본연의 애정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 네모 선장의 배 노틸러스호를 하나의 주권국가라 가정한다면 그것은 어떤 국가의 형상을 하고 있는지요? 네모 선장이 이상적이라 여기는 국가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이 역시 작품 속의 대화나 묘사를 인용해 써 주세요.
“나는 사회와 인연을 끊었어요. 그 이유를 평가할 권리는 오직 나만이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회의 규칙에 따르지 않습니다. 내 앞에서 다시는 사회의 규칙을 들먹이지 마시오!” (page 92)
그는 인간의 법 테두리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 (page 93)
“오직 바다에서만 인간은 독립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어떤 지배자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누구나 자유롭습니다!” (page 100)
“나는 바다에 도시를 세우는 것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노틸러스’호처럼 아침마다 숨을 쉬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오는 해저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 자유로운 도시, 독립된 도시들! 하지만 또 모르지요. 어떤 폭군이.......” 네모 선장은 격렬한 몸짓으로 말을 끝냈다. 그리고는 불쾌한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 나에게 직접 말을 걸었다. (page 175)
이러한 대사와 묘사들을 보면서 내가 아는 철학자들의 주장 중에서 노자가 주장했던 이상적인 국가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한다.
노자의 주장 중에서 네모 선장과 의견이 겹치는 부분을 떠올리자면 무위와 소국과민이 있다. 노자의 무위는 통치방법 중 하나인데, 군주가 국가의 목적을 스스로 정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온갖 제도와 법률을 만들어 백성들을 지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세상 만물은 장차 저절로 자라게 되니 억지로 무언가 인위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네모 선장은 사회에서 지정한 규칙, 즉 법에 구속되는 일을 싫어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무위와 비슷하게 보였다.
또한 노틸러스호에 경제와 관련된 책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물질적이고 속물적인 행위에 신물이 난 사람이다. 그러니 법이 없으며 모두가 물질적인 것들에 욕심이 없는 사회여야 한다. 그리고 어떤 지배자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연료, 옷, 잉크와 식량 등 바다에서도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는, 그러면서 노틸러스호의 선원들처럼 운명의 공동체로 유지되고 뭉치는 사회여야 한다. 소국과민은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이 모여 살면서 문명의 발달은 없으나 백성들은 욕심이 없으며 소박하고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이상적인 국가상이다. 네모 선장은 문명의 발달을 막아야 한다고 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부분들이 겹쳐 떠올랐기 때문에 노자의 이상국가처럼 국가가 이루어질 것 같다.
3.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네모 선장과 대비하여 아로낙스 교수는 신원이 매우 분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또한 어떤 나라 출신인지, 사물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등의 문제에 대해 매우 강한 집착을 보이기도 합니다. 분명 이들은 대립되는 두 개의 가치를 대변하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아로낙스 박사와 네모 선장이 대비되는 점 세 가지를 이들의 말을 인용해 써 주세요.
“그건 야만인의 권리겠지요. 문명인의 권리는 아닙니다.”
그러자 선장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로낙스 박사, 나는 당신이 말하는 의미의 문명인은 아닙니다! 나는 사회와의 인연을 끊었어요. 그 이유를 평가할 권리는 오직 나만이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회의 규칙에 따르지 않습니다. 내 앞에서 다시는 사회의 규칙을 들먹이지 마시오!” (page 92)
“적어도 고인들은 평화롭게 잠들어 있습니다. 상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그렇습니다.” 네모 선장이 엄숙하게 받았다. “상어와 인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page 254)
아로낙스 박사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명망이 있는 사람이며 본인도 인정했다시피 사회 속에 사는 사람이다. 반면 네모 선장은 그 어떤 자세한 과거사도 알 수 없는 베일 속의 인물이며,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네모 선장은 고인을 추모할 때도 집착적으로 세속에서 벗어나는 삶을 언급했고, 물속에서의 노틸러스호의 움직임만큼이나 규칙에서 자유로웠다. 같은 바다 깊은 곳, 노틸러스호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뭍에서의 규칙과 관점을 따르는 아로낙스 박사와 육지와 멀어져 새로운 자기만의 규칙에서 살아가는, 무정부주의자처럼 보이는 네모 선장은 삶의 관점 자체부터 대조되었다.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선장. 당신은 전기의 진정한 동력을 발견하셨군요. 언젠가는 사람들도 그것을 발견하겠지만.......”
“글쎄요. 사람들이 과연 그것을 발견할지는 모르겠습니다.” (page 114)
아로낙스 박사는 과학적 호기심에 이끌리는 바람에 노틸러스호에서 탈출하는 것을 망설이기도 했다. 그는 박사답게도 뛰어난 과학기술이 이대로 묻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물론 네모 선장은 자신의 귀중한 연구결과를 지상의 사람들에게 쉽게 넘겨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기술력과 발전력을 낮게 보는 태도였다. 아로낙스 박사는 진보는 더디지만, 언젠가 인간이 노틸러스호를 움직일 기술을 갖게 되리라고 생각했으나 네모 선장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인간의 발전을 바라보는 견해 역시 달랐다.
“내 평생의 연구 성과가 담겨 있는 이 원고는 물에 뜨는 작은 용기 속에 밀봉될 겁니다. ‘노틸러스’호에 타고 있는 우리들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가 그 용기를 바다에 던질 것이고, 그러면 그 용기는 물결을 타고 어디로든 흘러가겠지요.”
“선장, 그 뜻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당신의 연구 성과는 절대 사라지면 안 됩니다. 하지만 당신이 채택한 방법은 좀 허술해 보이는군요. 그 용기가 바람을 타고 어디로 흘러갈지, 누구 손에 들어갈지 누가 알겠습니까? 선장이나 선장의 부하들 가운데.......”
“안 됩니다!” 선장이 날카롭게 내 말을 막았다. (page 507-508)
둘은 명성과 명예에서도 다른 입장을 취했다. 논문을 쓰고 저자를 밝히며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에 있어서는 누가 이뤄내고 찾아내는지가 중요하다. 아로낙스 박사도, 네모 선장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육지에서의 명예로운 일이었다. 아로낙스 박사는 본인이 여러 언어로 쓴 귀중한 연구 자료를 아무렇게나 바다에 떠내려 보내는 네모 선장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네모 선장은 도통 그 끔찍한 사회에서 유명해지고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을 원하지 않았다.
4. 책에서 실제로 언급된 해저의 가장 깊은 수심은 4 league(lieue)였습니다. 그런데 책의 제목은 20,000 leagues입니다. 쥘 베른이 제목을 그렇게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책의 서술자는 아로낙스 박사로, 그의 기이한 해저 여행기를 아로낙스 박사의 시각에서 책으로 펴낸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아로낙스 박사가 ‘나는 열 달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바다를 2만 해리나 여행했고 (page 545)’ 라는 부분에서 따왔으리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아로낙스 박사가 2만 해리로 여긴 이유는 멜스트롬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여 노틸러스호는 사라졌고 네모 선장과 선원들의 생사도, 그의 복수극의 결말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아로낙스 박사는 바다 속 깊은 곳을 거닐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네모 선장과 자신은 답할 수 있다고 하지만, 네모 선장의 행방이나 바다 더 깊은 곳의 구석구석까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해저 2만 리>는 쥘 베른이 바다를 탐험하고 쓴 이야기가 아니라 상상력에서 쏟아져 나온 이야기이기에 4의 반절을 제목으로 지었다고 생각했다.
5.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유독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나요? 어떤 것인가요? 그 이유를 공유해 주세요.
네모 선장이 진주채취장에서 착취당하던 인도인 잠수부를 구하고 난 뒤에 그 인도인은 억압당한 나라의 주민이며, 자신은 자기가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동포라고 말하는 부분과 난파선에서 발견한 보물들을 본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고통받는 사람들과 억압받는 민족을 위해 쓴다는 부분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네모 선장은 자신이 살아가던 사회에서 환멸감과 경멸감을 느끼고, 바다 속에서 고립된 생활을 추구했다. 아로낙스 박사 일행이 노틸러스호에 처음 탔을 때와 그 이후에도 종종 아로낙스 박사와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고집스레 바다 속을 선택하고 육지에서 멀어지려고 했음에도 여전히 인간이었던 부분이 놀라웠다. 여전히 인류의 고통을 느끼며, 단순히 본인의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민족에 대한 부분이었다. 무엇이든 바다에서 해결하며 육지와의 연은 끊었던 것처럼 보였으나 마음까지 그러지 못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6. 위의 문제와 이에 대한 답을 '복사'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세요.
https://gwhan925318.tistory.co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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